그러므로 카리용은 악기로서의 요소를 갖춘 23개 이상의 종들의 집합을 말하며, 1~2개의 종은 카리용이 아니라 단지 종일 뿐이다. 또한 3~4개의 종으로 단순한 선율을 되풀이 하는 것도 카리용이 아니라 따로 구분하여 차임이라고 한다. 예컨대 런던 국회의사당 시계탑에 빅벤과 함께 설치된 4개의 종은 웨스트민스터 차임이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카리용은 3~4 옥타브의 음역을 가지지만, 5~6 옥타브 음역을 가진 것도 있다. 카리용의 최저음 종(bourdon)은 대개 가온음(C)에서 시작하는데, 규모가 큰 카리용의 경우 이 최저음을 내는 종의 무게가 6~7톤에 이르며, 반면 가장 높은 음을 내는 종은 작고 무게가 약 9kg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카리용 음악은 이 특별한 악기에 맞게 카리용 연주자가 편곡한 것인데, 대체로 17~18세기의 바로크 음악이 이 음악에 잘 어울리며, 특히 비발디, 헨델, 바흐, 모차르트 등의 작품들이 카리용을 위한 편곡에 적합하다.
종이 단순히 시간을 알리는 기능에서 벗어나 선율까지 만들 수 있게 되면서 벨기에와 네덜란드 지역을 중심으로 종의 음악적 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는데, 이 지역은 당시 유럽에서 종 만드는 기술이 가장 발달한 곳이었다.
한 벌의 종들을 배열하는 현대 카리용의 초기 형태는 1480년 벨기에의 플랑드르 지방에서 처음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형태는 점차 네덜란드와 북부 프랑스로 널리 확산되다가 1644년에 네덜란드 기술자인 에모니 형제(Francois & Pieter Hemony)가 최초로 정확한 음으로 조율된 종을 주조하는데 성공하면서 그 절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18세기 말 이 기술을 계승한 앤트워프 지방 기술자들이 사망하면서 카리용 제작산업은 오랜 기간 침체기를 겪다가 1890년대에 이르러 영국 러프버러(Loughborough)에 있는 존테일러사(John Taylor 社)가 새롭고 획기적인 종 조율기술을 개발함으로써 비로소 카리용 예술은 중흥의 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1922년에는 카리용 연주자를 양성하는 최초의 음악학교와 카리용 음악 전문 출판사가 설립되어 카리용이 하나의 음악 장르로 발전하는데 필요한 기반을 갖추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1929년 록펠러 2세가 어머님의 기도와 은혜를 기념하여 뉴욕 리버사이드 교회를 건립하고, 74개의(현재의) 종으로 구성된 카리용을 설치하였고, 1932년에는 72개의 종으로 구성된 카리용이 시카고대학교내의 록펠러 채플에 설치되었다.
오늘날에는 유럽과 미국은 물론 일본, 러시아, 캐나다, 호주, 필리핀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게 되었으며, 특히 카리용 컴퓨터의 개발로 전문 카리용 연주자 없이도 프로그램에 의한 자동연주가 가능하게 된 이후부터 카리용의 수는 전세계적으로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